[26년 10월호 #1] 왜 하필 ‘프렌치’일까?

왜 하필 ‘프렌치’일까?
프렌치로스트부터 프렌치프레스, 프렌치토스트, 프렌치키스까지
‘프렌치’라는 단어가 붙으면 왠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프렌치프레스, 프렌치토스트, 프렌치로스트, 프렌치키스….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인데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와 관련 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씩 살펴보면 이야기가 꽤 재미있습니다. ‘프렌치’라고 해서 반드시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기술을 가리키고, 때로는 프랑스에서 발전한 음식이나 취향을 뜻하며, 어떤 경우에는 영어권 사람들이 프랑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이름으로 붙인 경우도 있습니다.
진하게 볶으면 왜 ‘프렌치’일까?
커피의 프렌치 로스트(French roast)는 원두의 원산지가 프랑스라는 뜻이 아닙니다. 매우 짙게 볶은 강배전 커피를 가리키는 관습적인 명칭입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지역마다 커피를 볶는 정도와 선호하는 맛에 차이가 있었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진한 커피 취향과 연결해 ‘French roast’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다만 정확히 누가 처음 이 이름을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특정 국가의 공식적인 로스팅 기준이라기보다 매우 깊은 배전 스타일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즉, 프렌치 로스트의 ‘프렌치’는 원산지라기보다 유럽의 진한 커피 문화와 연결된 이름에 가깝습니다.
프렌치프레스는 정말 프랑스산일까?
커피를 추출하는 프렌치프레스의 역사는 더 흥미롭습니다.
1852년 프랑스의 앙리 오토 마이어(Henri-Otto Mayer)와 자크 빅토르 델포르주(Jacques-Victor Delforge)가 플런저를 이용한 커피 추출도구의 선구적인 특허를 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형태와 가까운 구조는 1920년대 이탈리아의 아틸리오 칼리마니(Attilio Calimani)와 줄리오 모네타(Giulio Moneta)의 특허를 비롯한 여러 개량을 거쳐 발전했습니다.
그러니 프렌치프레스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와 이탈리아의 기술적 발전이 만난 도구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름은 왜 ‘프렌치’일까요?
초기 형태가 프랑스 특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의 배경에 프랑스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재 형태를 완성한 과정에는 이탈리아와 다른 유럽 국가의 발명과 개량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렌치’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발명국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프렌치토스트의 고향은 프랑스가 아니다?
아침 식사로 흔히 먹는 프렌치토스트도 이름만 보면 프랑스 음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음식의 뿌리는 프랑스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로마의 요리 기록에는 우유 등에 적신 빵을 조리하는 음식이 등장하고, 중세 유럽에서도 비슷한 조리법이 여러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음식이 ‘팽 페르뒤(pain perdu)’, 즉 ‘잃어버린 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딱딱해져 그냥 버릴 수도 있는 오래된 빵을 다시 맛있는 음식으로 되살린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French toast’라는 명칭은 적어도 17세기 영국의 요리책에서 확인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초기 기록의 ‘French toast’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프렌치토스트와 완전히 같은 음식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프렌치토스트의 ‘프렌치’는 프랑스가 최초 발명국이라는 의미로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프랑스에서 발전한 조리법과 프랑스 음식에 대한 영어권의 인식이 이름에 함께 얽혀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가장 의외의 ‘프렌치’ — 프렌치키스
프렌치키스는 음식이나 공예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영어권에서 ‘French’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프랑스인과 프랑스 문화를 세련되고 자유분방하며 연애와 성에 관해 대담하다는 이미지와 연결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화적 인식 속에서 혀를 사용하는 키스를 ‘French kiss’라고 부르는 표현이 20세기 초 영어권에서 자리 잡았습니다. 사전 자료에서도 이 명칭은 1920년대에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이 키스를 ‘프렌치키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랑스어에서는 일반적으로 혀를 사용하는 키스라는 뜻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프렌치키스’라는 이름은 프랑스에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프랑스를 바라보던 영어권의 문화적 시선에서 만들어진 이름에 가깝습니다.
‘프렌치’는 하나의 문화적 별명이었다
이렇게 살펴보면 프렌치라는 단어에는 여러 층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프렌치프레스처럼 프랑스의 초기 기술과 연결된 경우도 있고, 프렌치토스트처럼 프랑스에서 발전한 음식문화와 연결된 경우도 있습니다. 프렌치로스트처럼 프랑스와 유럽의 취향을 연상시키는 이름도 있고, 프렌치키스처럼 프랑스에 대한 외부의 문화적 이미지가 만들어낸 이름도 있습니다.
결국 ‘프렌치’는 단순한 국적 표시가 아니었습니다.
한때 영어권 사람들에게 프랑스는 음식과 패션, 카페와 예술, 사랑과 세련됨을 상징하는 문화적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조금 특별하게 보이게 하고 싶을 때 ‘French’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습니다.
프렌치라는 두 글자 뒤에는 프랑스라는 나라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프랑스를 바라보며 만들어낸 하나의 이미지까지 함께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에 카페에서 프렌치프레스를 만나거나 메뉴판에서 프렌치토스트를 보게 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프랑스에서 온 걸까?”
이 작은 질문 하나가 음식과 커피의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역사와 문화를 발견하는 재미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프렌치프레스
“프랑스의 초기 특허에서 출발했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발명가의 개량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발전한 프렌치프레스.” https://europeancoffeetrip.com/the-history-of-french-pres

“프랑스에서는 ‘잃어버린 빵’이라는 뜻의 팽 페르뒤(pain perdu)로 불리는 음식. 오래된 빵을 다시 맛있는 음식으로 되살린다는 의미가 이름에 담겨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French_toast
“원산지가 아닌 로스팅 스타일을 뜻하는 프렌치 로스트. 짙은 색과 강한 로스팅 향이 특징이다.”https://www.themanual.com/





